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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앙스타러 님 (@starinliver__)

 

 

 

 

48일 간의 활동기간 끝에 주어진 달콤한 휴가였다. 이번엔 각자 휴식을 취하는 대신 단합회를 겸할 겸 알칼로이드 모두가 다 같이 휴가를 가게 됐다. 운전대를 잡은 것은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괜찮습니다. 주께서 우릴 지켜주실 겁니다.’ 라고 말한 타츠미였다. 아이라가 ‘타츠미 선배 사실 즐기는 거 아니야?’ 하고 항의하자 타츠미는 늘 그렇듯 의중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일뿐이었다. 사실 그가 아니고야 대신 운전할 사람이 없었다. 이번 여행은 알칼로이드 멤버끼리 가는 여행이었으니까.

 

마요이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운전면허를 따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수자석에 탑승하자 타츠미가 당연하다는 듯 마요이의 안전밸트를 매어줬다. 청량하고 부드러운 타츠미의 체향이 가볍게 스쳤다. 이내 타츠미는 뒷자석을 확인하며 ‘다들 안전밸트 단단히 맸나요~?’ 하고 물었다. 그에 히이로와 아이라가 일제히 ‘네!’ 하는 대답을 해왔다.

 

평온하고 상냥한 시간. 마요이는 이 장소에 자신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안전밸트를 꼭 쥐었다. 어쩐지 사라지고 싶었다. 모두에게서가 아니라 모두와 함께. 지금 이대로…. 그런 건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을 텐데. 그런데도 망가져 버릴까 무서워서. 어찌나 이기적인지. 마요이는 질끈 눈을 감았다. 스스로의 추악함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마요이의 도피는 출발 전 타츠미가 건네준 멀미약 덕분에 수월하게 이뤄졌다. 가물가물 눈이 감겨왔다.

 

“히로군! 구명조끼가 안 보여!”

 

아이라의 단말마 외침을 들으며 마요이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스타프로의 대표인 텐쇼인 에이치가 제공해준 숙소에 도착했다. 프라이빗 비치를 겸하고 있는 숙소에선 짭짤한 바다 내음이 시원스레 풍겨왔다. 누군가 마요이를 흔들어 깨웠다.

 

‘타츠미 상인가? 이렇게 깊게 잠들다니….’

 

마요이는 졸린 눈을 깜빡이며 죄송해요오…. 짐 정리 같이… 해요오…. 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 때 마요이의 몸을 도로 단단히 붙잡아 세우는 것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안전밸트였다.

‘어라…. 타츠미 상이… 풀어주지 않았었나….’

 

생각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마요이는 붉게 달아오르는 얼굴과 함께 잠이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아… 무슨…. 생각을…. 이런 건 원래 제가… 제가 해야 하는 건데….’

 

부끄러움에 급하게 안전밸트 버튼을 딸깍거리자 평소엔 그렇게 잘 풀리던 것이 어디에 걸린 것인지 잘되지 않았다.

 

“앗…. 이게 왜…. 아….”

 

창밖을 보니 이미 짐을 옮기고 있는 히이로와 아이라가 보였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운적석은 비어 있었다.

 

‘짐을 꺼내러 가셨나…?‘

 

마요이는 고개를 돌려 트렁크 쪽을 살폈다. 한 인영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에 마음을 놓은 마요이가 차분히 안전밸트를 풀자 아까와는 달리 경쾌한 딸깍소리와 함께 끈이 풀렸다. 차에서 내린 마요이가 서둘러 트렁크 쪽으로 향했다.

 

“타츠미 상, 전 뭘 들고 가면 될까요.”

 

챙이 큰 모자가 마요이의 머리 위에 꼭 맞게 씌워졌다.

 

“햇빛은 힘들죠?”

 

“아….”

 

유난히 흰 마요이의 피부가 잠깐 사이에 햇빛에 타기라도 한 듯 보기 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

 

물에 얻어맞기라도 한 듯 피부가 얼어붙었다. 마요이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챙 끝을 손으로 잡은 채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은….

 

“들었습니다. 히이로 군에게서.”

 

생경한 목소리를 가진 한 남자였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띤 그는 마요이에게 아이스박스와 함께 말을 건넸다.

 

“들 수 있겠어요?”

 

마요이는 얼떨떨해하며 짐을 건네 들었다. 꽤 묵직해 한걸음 그리고 몇 걸음 뒷걸음질 치던 마요이는 자그맣게 ‘네…네에….’라고 대답하며 몸을 돌렸다. 무례한 행동이란 자각은 뒷전이었다. 마요이는 서둘러 숙소로 향했다.

 

현관에 아이스박스를 내린 마요이가 신발장의 신발을 확인했다. 히이로의 운동화. 아이라의 샌들. 그리고…. 그리고…. 마요이는 신발을 벗곤 안으로 들어섰다. 1층엔 창 전면으로 바다가 보이는 넓은 거실과 세련된 디자인의 부엌. 세면대와 간이 샤워실이 있는 욕조. 더블 침대가 놓인 커다란 방이 있었다. 마요이는 계단을 밟았다.

 

긴 복도 끝에 줄줄이 이어진 3개의 방. 하나는 1층과 대비되는 큰 욕조가 놓인 욕실. 그리고 작은 방. 아이라의 것으로 보이는 가방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방.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이었다.

 

문고리를 붙잡은 마요이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낯빛은 어김없이 창백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엔 흰 시트로 단장된 침대 위에 도란도란 앉아 있던 이들이 마요이를 반겨주었다.

 

“마요이 선배! 우리 나중에 바닷가에 가서 수영 시합하자!”

 

“마요이 선배한테 뭘 시키는 거야? 진정 좀 하라구, 바보!”

 

기대감에 들뜬 웃음을 터뜨리는 이들에게 마요이는 마주 웃어보일 수 없었다. 문틀을 쥔 마요이의 손이 잘게 떨렸다.

 

‘왜…. 왜… 없지?’

 

“히…. 히이로 상…. 아이라 상…. 타츠미 상이…, 안 보여요.”.

 

“뭐? 누구?”

 

아이라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마요이는 다시금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좀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 아…, 으….”

 

“응? 잘 안 들려. 선배, 혹시 아파?”

 

아이라의 얼굴에 걱정이 깔렸다.

 

“마요이 선배는 여기서 좀 더 쉬고 있을래?”

 

“그래, 무리하지 마. 짐은 우리가 풀게!”

 

“……맞다! 그러고 보니 짐 정리! 매니저 형 혼자 다 하고 있겠네! 히로 군 때문이잖아. 딴 길로 새버렸어. 어서 가자!”

 

아이들이 마요이를 스쳐지나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를 끝으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속에서 마요이가 떨어지지 않던 말문을 뗐다.

 

“아…이, 이…. 이상해요…. 아…. 아…, 뭔가 잘, 잘못된 것 같은데…. 하….”

 

마요이는 겁에 질린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벽에 어깨를 기댄 채 주르륵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매니저라고 하는 남자의 열쇠고리엔 모두와 함께 찍은 사진이 달려있었다. 무대 위에 서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과, 히이로 그리고 아이라…. 팬 라이트로 다이아몬드를 만든 팬들까지. 그리고… 그것이 전부였다.

 

“타츠미상….”

 

마요이가 가슴을 부여쥔 채 천천히 바닥으로 고개를 숙였다. 잘못된 게 맞는 것 같은데 분명 뭔가… 이상한데…. 그것이 이 상황인지 아니면 자신인지…. 눈물이 밀려 올라왔다.

 

“타츠미사앙….”

 

숨이 조여들었다.

 

‘타츠미 상은…. 어디 있는 거지? 왜 안 보이는 거지? 왜… 없는 거지…? 분명 쭉 같이 있었는데….’

 

……정말? 천장에 숨어있는 자신을 눈치채고…. 저를 돌봐주고…. 끊임없이 상냥하게 대해주던…. 그 사람이 정말로… 존재했나? 카제하야 타츠미…. 그는…, 그런 존재를 갈구하던 자신이 만든…. 어쩌면 기어코 미쳐버린 자신이 꾸며낸….’

 

 

 

“헉……!”

 

 

 

마요이는 번쩍 눈을 떴다. 마요이는 어느새 침대 위로 옮겨져 있었다.

 

‘…기절한… 건가?’

 

고개를 돌리니 해가 어느덧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었다.

 

마요이는 얇은 담요를 두른 채 비틀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아….”

 

목이 칼칼했다. 마침 선반 위에 놓인 물을 컵에 따라 마신 마요이가 이내 몸을 추스르며 방 밖으로 나섰다. 시끌벅적했다. 거실 너머 창밖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고있는…, 히이로와 아이라, 매니저의 모습이 보였다. 마요이는 굳어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숨이 막혀왔다.

 

‘다, 다시 방으로 돌아가야…겠어요….’

 

그때였다. 어디선가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 것은.

 

‘이건… 우리 노래인데….’

 

그 소리는 창 너머가 아닌….

 

‘쿵——쿵쿵—! 쿵——쿵쿵—!’

 

계단 아래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아깐 못 보던 곳인데….’

 

마요이는 창밖을 한 번 더 살피곤 조심스럽게 계단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불이 환하게 밝아져 왔다. 복도 위엔 누군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그림자가 비춰졌다. 무언가를 직감한 마요이는 그것이 사라져버리기 전에 문 너머로 뛰어가듯 들어갔다.

 

“하…. 하아…. 마요이상?”

 

갑작스러운 방해꾼의 등장에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이는 카제하야 타츠미였다.

 

“…타, …츠미상….”

 

마요이의 가느다란 부름에 노래를 끈 타츠미가 스포츠 타올로 뺨을 닦아내며 마요이에게로 다가갔다.

 

“네, 마요이상. 몸은 좀 괜찮나요?”

 

“아….”

 

열기를 품은 타츠미의 손등이 마요이의 뺨에 짧게 닿았다 떨어졌다.

 

“걱정했어요. 갑자기 일사병으로 쓰러져서…. 분명 무리한 거겠죠. 다행히 어디 잘못 부딪친 곳은 없었어요.”

 

그런데도 타츠미의 손은 혹여 혹이 난 곳이 없는지 마요이의 머리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타츠…미상…. 왜, 왜… 여기….”

 

“…아, 찾고 있었나요? 미안해요. 휴가차 온 거니까 연습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놀러 온 거니까 히이로 군도 아이라 군도 즐기고 싶을 거고요.”

 

타츠미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구르고 있는 이온 음료로 목을 축이곤 마요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마요이 상이 찾아 와주니 기분이 좋네요.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어울려주실 수 있을까요?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요. 아직 몸을 움직이는 건 무리일 테니 지도 부탁드립니다.”

 

마요이는 뭔가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타츠미는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이며 껐던 노래를 다시 틀었다. 그가 연습하고 있던 곡은 앨범의 수록곡 중 하나였다. 격하게 움직이는 대신 빠르게 몸을 틀어야 하는 동선 때문에 난항을 겪고 있다 말해왔다.

 

“여기서 왼쪽으로 턴을 해야 하던데 무게 중심이 쏠려서 의식을 해도 열에 다섯은 부하가 걸리더군요.”

 

“아…. 그럼, …여기서 타츠미 상 위치가… 왼쪽… 후위니까…. 전위에 있는 제가 이런…식으로 동선을 옮겨가 잠시 가려드리는 건… 어떨까요? 잠깐의 시간 벌이는… 될 거예요. 측면에서 봐도 크게 티가 나지 않을 거고…. 되도록 무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마요이상. 아, 확실히 그러면…. 깔끔해 보이네요. …마요이 상에게 부담을 드리게 된 건 아닌지….”

 

“아…아니에요오…. 추하고 볼품없는 저지만…. 타츠미 상에게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쁜걸요….”

 

“…마요이 상은 조금도 추하거나 볼품없지 않습니다. 당신이 저와 함께 알칼로이드에 있어줘서 늘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요.”

 

타츠미가 마요이의 손등을 부드럽게 덮어 쥐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코끝에서 시작한 알싸함이 마요이를 삼켰다. 타츠미의 끝없는 다정함에 익사할 것 같았다. 익사하고 싶었다.

 

“…타츠미 상은…. 왜 다시… 아이돌이 되셨나요…?”

 

불현듯 자신이 하려던 말이 이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지만 목이 매여오던 차였기에 마요이는 의식적으로 자신이 내뱉은 말로 주의를 돌렸다.

 

“글쎄요. …다리가 이렇게 되고 나선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도 했습니다. 정상에 닿아보기도 했고 뼈아픈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으니까요. 어쩌면… 그것이 제가 아이돌 생활을 하며 겪을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고…. 아이돌로서의 생명은 이제 다한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습니다.”

 

이어지는 참회와도 같은 고백에 마요이는 조용히 타츠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제가 이곳에 있든 없든 이 업계는 계속해서 흘러갑니다. 새로운 아이돌들이 데뷔하고 빛을 보지 못했던 이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또 누군가는 비탈길을 내려가겠죠. 저 혼자만의 항해는 이미 끝이 났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아이돌들의 항해는 계속될 겁니다. 제가 이미 다녀갔던 곳을 지나기도 하고 제가 가지 않았던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기도 하면서요. …그랬더니 조금 더 이곳에 있고 싶어지더군요. 계속되는 이야기를 또 한 명의 아이돌로서 지켜보고 싶어서요.”

 

“…힘들진 않으신가요…?”

 

“하하, …물론 마냥 즐겁진 않습니다. 다리는 오늘처럼 발목을 붙잡기도 하고…. 이전엔 없었던 ES 새로운 체제는 생경하기만 하니까요. 정말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그렇지만요. …하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알칼로이드의 일원이 되어 마요이상과 히이로군, 아이라군을 만났으니까요. 계속하지 않았다면 함께 봤던 그 경치들을 영영 보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과 항해를 계속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하고 싶고요.”

 

마요이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카제하야 타츠미는… 거짓이 아니다. 자신이 꾸며낸 허상도 가짜도 아니다. 음지에 속해있던 자신은, …자신 따위는 이런 빛을 내는 존재를 만들지 못한다.

 

“타, 타츠미상….”

 

“…마요이 선배…!”

 

아이라의 목소리였다. 얼굴을 번쩍 든 마요이가 연습실 입구를 바라봤다.

 

“마요이… …마요이 선배…! 정마알…!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아?”

 

얼굴에 울음을 가득 달고서 아이라가 두 사람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또… 또 이런 곳에 있고…. 흑…. 말이라도 해주고 가지이….”

 

아이라는 코를 훌쩍거리며 바닥에 앉아 있는 마요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어서 가자…. 히로 군도 매니저 형도 찾고 있어. 히로 군 그 바보는 선배를 찾겠다고 바다에 들어갈지도 몰라! 밤인데…! 엄청 깜깜한데…!”

 

마요이는 얼떨결에 아이라의 손을 맞잡은 채 옆을 돌아봤다. 카제하야 타츠미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마요이 상은 요즘 어떻습니까? 힘들진 않으신가요?”

 

“아….”

 

“선배…, 마요이 선배?”

 

타츠미를 바라보는 마요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런 생각 마세요. 당신은 저희에게 필요한 존재니까요. 당신이 없었으면 우리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마요이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카제하야 타츠미는 말을 이어갔다. 왜냐하면 그는 분명 존재했으니까. 이곳에 있었으니까.

 

-“과…과분한… 말이에요오…. 제, 제가 한심하게 굴었죠오…. 곤란하게 해드려… 죄송해요, 타츠미상….”

 

“그냥 하는 말이 아닌데도요. 하하…. 어떻게 하면 믿어주실까요?”

 

타츠미가 다리를 끌어 올려 얼굴을 기댄 채 마요이를 바라봤다. 마요이는 알고 있었다. 이 다음에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마요이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심장에서 비롯된 고통이 목전까지 치밀어 올랐다.

 

“마요이 상…. 저는 정말로 당신에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흑…. 흐윽…. 아….”

 

심장이 뜨거워졌다. 예상치 못했던 설렘으로 붉어졌던 자리를 이제는 그 열락을 고스란히 품은 슬픔이 대신 채웠다.

 

-“네… 네? 오, 오히려 저야말로…. 타츠미 상께 의지하고 있는 걸요…. 늘… 폐를 끼치기만 하는데….”

 

“마요이 상. 당신은 상냥하고 재능이 많은 사람이에요. 우리 알칼로이드와 저희의 팬들은 그걸 알고 있어요. 당신을 좋아하고 …믿고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저 또한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니까요.”

 

-“……네?”

 

“타, 타츠미 상…. 흑…. 흐윽….”

 

타츠미의 이름을 부르는 마요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보고 싶었다. 자신에게 그 말을 해주던 타츠미의 얼굴을. 부정 할래야 할 수 없는 커다란 애정을 담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물로 가려진 마요이의 흐린 시야 너머로 한 사람의 인영이 맺혔다. 눈을 깜빡여 맞춘 초점엔 피를 뒤집어쓴 카제하야 타츠미가 있었다.

 

“하악…. 하…. 으아……. 아아….”

 

마요이는 발작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움직일 수 없었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마요이상…. 괜찮습니다. 울지 마세요. 제가… 곧 풀어드릴게요.”

 

마요이의 시선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타츠미의 하반신은 찌그러진 차체에 집어 삼켜져 있었다. 낭자한 출혈은 시트를 적시고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내렸다. 타츠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엉망이 된 의자 옆으로 손을 집어넣어 마요이의 안전밸트를 풀어내려 하고 있었다.

 

-“타츠미 상…. 하…. 아이들…. 히이로 상과…. 아이라 상…. 아이라 상은….”

 

-“…두 사람 모두 안전밸트를 하고 있었고…, 뒷 자석에 있었으니까…. 괜찮습니다. 괜찮을 거예요. …마요이상, 밖으로 나가면 두 사람을 꺼내주세요.”

 

-“타츠미 상…. 타츠미 상도…, 나가야 해요….”

 

“네. …저도 나갈 겁니다. 구급차가 오면…. 도움을 받아 …빠져나갈 테니까. 아이들을 먼저 부탁합니다.”

 

딸칵하는 소리와 함께 안전밸트 줄이 풀렸다. 힘없이 늘어진 안전밸트를 걷어낸 마요이가 타츠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엉망이 된 타츠미의 손이 마요이의 뺨에 닿았다.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타츠미의 눈이 느리게 감겼다 떨어졌다.

 

“……나가보세요, 마요이상.”

 

손이 떨어지고 마요이가 갈등 끝에 문손잡이에 손을 걸었을 때 주변이 환하게 밝혀졌다.

 

“…흐윽…. 흐엉……. 마요이 선배애….”

 

사위가 온통 캄캄했다. 눈을 깜빡거린 마요이는 자신이 지하 연습실에 있음을 깨달았다. 가슴께가 축축했다. 아이라의 금빛 머리카락이 품 안에서 들썩이고 있었다.

 

“…아이라상….”

 

마요이가 아이라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자 아이라가 눈물 콧물을 쏟은 얼굴로 마요이를 올려다보았다.

 

“흑흑…. 선배 나가자아…. 나가서어…. 흑…. 흐엉…. 타츠미 선배는 없어어…. 여기 없다구우….”

 

서로에게 상처로 남은 과거를 읊는 일그러진 얼굴엔 젖어 엉킨 속눈썹이 떨리고 있었다. 마요이는 아이라를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네에…. 네, 아이라상…. 타츠미상은……. 여기 없어요…. 알고… 있어요….”

 

마요이는 히끅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썩이는 아이라의 등을 쓸어내렸다.

 

아이라와 히이로를 멀찍한 도보에 피신시켜두고 다시 차로 다가가던 마요이는 굉음과 함께 폭발한 차량을 마주했다. 불길이 치솟아 오르는 차를 보며 마요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타츠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안전밸트를 풀어주던 그 짧은 순간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걸. 그럼에도 끝끝내 마지막을 입에 담지 않았다. 혹여나 마요이가 발을 떼지 못하고 옆에 남으려 할까. 입에서 맴돌던 사랑한다는 말마저 삼키며.

 

화물차와의 추돌 사고였다. 신호를 위반하며 달려오던 상대 차량이 알칼로이드가 탄 차량을 덮쳤다. 찰나의 순간 핸들을 꺾은 타츠미 덕에 아슬아슬하게 전복은 피했으나 운전석 쪽 보닛은 심각하게 반파되었다. 그럼에도 모두가 죽을 수 있었다. 세 사람이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었다.

 

그것이 꼬박 11개월 전의 일이었다. 이후 반년간의 재활 및 휴식 기간을 거친 알칼로이드는 3인조 체제로 두 달 전 복귀를 알렸다.

 

마요이는 아이돌을 그만두지 않았다.

 

타츠미의 말대로 타츠미가 없어도 아이돌 업계는 계속해서 굴러갔다. 타츠미의 부고로 잠시간 침체되었던 분위기 속에서 별들은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고 새로운 별들이 화려한 탄생을 알렸다.

 

탈력감과 공허함으로 꼬박 얼마의 시간을 흘려보냈을까. 활동을 계속 이어갈 것인지 저의를 물어온 관계자들을 몇 번인가 침묵으로 돌려보내던 마요이는 어느 날 꺼져버리고 싶은 몸을 일으켜 세워 다시 타륜을 움켜쥐었다.

 

“걱정시켜서 미안해요. …이제 괜찮으니까…. 같이 올라가요, 아이라상.”

 

알칼로이드는 타츠미가 계속해서 있고 싶어 했던 장소였다. 그가 지켜냈던 것을 마요이는 지키고 싶었다. 그가 알칼로이드로서 보고자 했던 경치를 이어나가기 위해. 자신을 사랑해줬던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 마요이는 그와 함께했던 함선을 타고 계속해서 수평선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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