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Xe 님 (@XEN5N2)
밀항(密航)
마요이는 경찰이 되었다. 사실 경찰이 되려던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경찰이 되었고 마약 단속반 소속이 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자잘한 마약 단속에는 성공했으나 승진과 관련한 큰 마약건에서는 성과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선배가 마요이에게 '카제하야 타츠미'에 대한 정보를 넘겨주었다. 이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영영 타츠미를 잡지 못할 수도 있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마요이는 타츠미를 잡기 위해 타츠미네 조직으로 잠입 수사를 하게 되었다.
타츠미네 조직으로 잠입한 지가 벌써 반년이 다 되어갔다. 그 사이 타츠미와 마요이 관계에는 많은 발전이 있었다. 마요이가 조직으로 들어오고 나서 타츠미의 웃음이 많아졌다는 것. 그리고 타츠미는 마요이가 곁에 없으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 타츠미가 어쩌다 마요이에게 빠졌는지는 마요이 외에 조직원 아무도 모른다.
타츠미가 마요이에게 빠지게 된 계기 첫 번째, 바로 얼굴. 처음 조직에 들어왔을 때 조심스럽게 머리를 넘기며 인사하는 그 모습이 타츠미는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자신의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면서 할 말은 다 하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으며 무엇보다 입가에 있는 점에 입을 맞추고 싶다고도 말했다.
두 번째, 마약 밀거래를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살인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마요이는 그 상황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처음에 타츠미는 마요이가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해 거부감, 두려움, 무서움이 있는 줄 알았으나 자신의 신조를 지키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꽤 흥미로워 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타츠미 자신도 모르게 마요이를 옆에 끼고 살게 되었다. 동거도 시작하게 되었으며 하루 일과가 마요이에서 마요이로 끝난다. 같은 침대에서 눈을 뜨고 아침 식사를 하고 사무실로 가서 회의도 하고 가끔은 타 조직과 거래를 하고 저녁 식사를 하고 같은 침대에서 눈을 감았다. 이제 마요이는 타츠미에게 있어 공기와 같은 존재,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마요이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그래도 자신의 신분은 경찰이었던 지라 타츠미를 잡기 위해서는 정보를 빼돌릴 필요가 있었다. 타츠미가 잠시 없는 사이에 거래가 되는 현장의 위치와 시각을 몰래 전하고 곧바로 사무실로 들어왔다. 마요이는 그간 타츠미와 보낸 세월에 정이라도 들었는 듯, 타츠미가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에 감화된 듯 정보를 빼내는 일에 죄책감을 느꼈다. 혹여나 타츠미가 알게 되면 자신을 어떻게 하려고 할 지.
그러던 와중에 마요이를 감시하던 한 조직원에 의해 마요이의 정체가 타츠미에게 알려지게 됐다. 타츠미는 내심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조직원의 입에서 전해져 오는 말이 사실이 아니길 바랐다. 모든 걸 다 알고 난 타츠미는 마요이에게 외국으로 수출할 마약 거래에 대한 정보를 흘렸다. 그러면서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마요이씨는 이 정보를 알리실 건가요?"
마요이는 그 말을 듣고 순간 움찔했다. 더 이상의 잠입은 끝난다는 듯한 말과 자신을 바라보는 게 달라진 듯한 모습에 타츠미가 다 알아버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요이는 타츠미와 보낸 세월이, 타츠미를 향한 마음이 너무나도 커져버려 망설이게 되었다. 마요이의 태도에 타츠미는 알았다고 하며 자리를 떴고 마요이는 곧바로 핸드폰을 들어 정보를 단속반에 흘렸다.
조직원은 방 밖에서 그 사실을 듣고 중국으로 가는 배 편을 마련해두었으니 오늘 밤에 가면 된다고 말했다. 타츠미는 수고했다며 조직원의 어깨를 두 어번 토닥여준 뒤에 이전까지 본 적 없던 쎄한 얼굴로 사무실에 향했다. 타츠미는 마요이를 놓아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마요이는 문자를 보내고 나서 내역을 지우면서 계속 생각했다. 이대로 단속반에 다시 들어가면 승진을 해서 제대로 살 수는 있을까, 타츠미를 보고 싶어하지는 않을까, 타츠미가 자기를 싫어하게 되면 어쩌나 등 타츠미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계속해서 생각한 결과는 하나였다.
중국으로 밀항하기 30분 전, 타츠미는 마지막으로 마요이에게 물었다.
"저와 같이 가지 않으실래요? 저, 마요이씨랑 계속 있고 싶어요."
그 말에 마요이는 타츠미도 자신과 같은 마음이라는 걸 알고 이전과 다르게 타츠미를 세게 안아주었다. 마요이는 이제 타츠미와 떨어질 수 없다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네, 좋아요."
12시가 되기 전, 마약을 수출하기 위한 항구에서는 사이렌이 울리고 타 조직과 타츠미네 조직원 몇 명이 현장 체포되었다. 선배는 마요이에게 연락해서 마요이를 찾으려 하였으나 이미 마요이는 타츠미와 함께 배를 타고 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지 오래였다.
새로운 선원
타츠미는 늘 바다가 궁금했다. 어렸을 때부터 바다와 가까운 마을에서 살았기에 그럴지도 모른. 혼자서 매번 해변가에 가서 모래 장난을 하고 놀기도 하고 조개 껍데기를 주우며 놀기도 했다. 어느 날은 바다 깊은 곳에 가보고 싶다며 무언가에 홀린 듯 바다에 슬금슬금 들어가니 어느 새 물은 타츠미의 턱 끝까지 차올랐고 타츠미는 여기서 죽나 싶었다. 그래도 빠르게 타츠미의 어머니가 이를 발견한 덕분에 타츠미는 다치지 않고 뭍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타츠미는 바다에 빠질 뻔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다를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이를 계기로 바다를 평정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졸라서 배 운항하는 법을 배우고 아버지가 선박 생활을 할 때 몰래 선장실 탁자 밑에 숨어있다 들킨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타츠미는 자기도 이제 선원하면 안되겠냐고 물었고 아버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타츠미의 응석을 받아주었다. 그렇게 해서 운항 실력이 나날이 늘게 된 타츠미는 배로 바다를 평정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저축해두었던 돈이 어느 정도 차고 나서 작은 배를 구입했다. 처음으로 자기만의 배를 갖게 되었을 때는 너무 기뻐서 운항하는 법까지 순간 잊어버렸다. 그래도 금방 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고 타츠미는 시간만 나면 자기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섬으로 배를 타고 나갔다.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고 나서는 마을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께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안녕을 말하고 배에 올라 정리를 한 뒤에 출발했다. 출발하고 나서 5, 6개월은 이 섬, 저 섬에 머물면서 먹을 것들을 찾아서 생활했다. 타츠미는 이런 자유로운 생활이 너무나도 좋았다.
다른 섬으로 옮겨가려고 할 때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렸다. 바다 한 가운데서 들릴리가 없는 노랫소리가 퍼지니 타츠미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키를 잡아 노랫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저 멀리서 작은 바위섬이 보이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바다에서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린다고 하면 절대로 홀려서는 안된다. 세이렌*의 노랫소리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니'
타츠미는 큰일났다는 듯이 빠르게 키를 돌려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가려고 했지만 돌아가려고 하면 할 수록 너울이 심해져 점점 바위 섬쪽으로 배가 향했다. 빠르게 배가 바위 섬에 박으려고 할 때 타츠미는 눈을 질끈 감고 큰 소리로 안된다며 외쳤다. 그러자 노랫소리를 멈추고 너울도 가라앉았다.
서서히 눈을 떴을 때는 바위섬에 배를 박지도 않았고 키를 꼭 쥔 채로 바다에 떠있는 자신이 보였다. 다행히도 다치치 않았구나하며 바위섬을 쳐다보는데 저 뒤로 세이렌의 모습이 보였다. 보랏빛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려 한 쪽으로 땋아두었고 하늘 하늘한 옷을 입어 태양이 이를 비추니 몸의 실루엣이 비춰져 어딘가 모르게 색(色)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바위 섬에 배를 정박해놓고 조심스럽게 배에서 내려 다가갔다. 세이렌의 모습은 실제로 처음보니 신기했다.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인어의 다리를 가진 것도 아니고, 날개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노랫소리로 사람을 홀려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보니 평범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세이렌의 정체는 '아야세 마요이'. 바위 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한다.
며칠 동안 마요이와 함께 바위 섬에 묵게 되었는데 타츠미는 마요이가 좋았다. 배를 타지만 않으면 노랫소리는 그저 아름다운 소리로만 들릴 뿐. 죽음에 이르게 하지는 않았다. 근처에서 물고기를 잡아서 같이 밥을 먹고 마요이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타츠미는 황홀함을 느끼고 마요이의 거처로 들어가 같이 잠을 청했다.
이제 슬슬 타츠미는 이 바위 섬을 벗어나 새로운 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마요이가 계속 눈에 밟혔다. 수많은 고민 끝에 타츠미는 마요이에게 물었다.
"저와 같이 가지 않으실래요?"
마요이는 그 말을 듣고 한 번도 벗어나 본 적 없는 이 섬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나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바위 섬이 아닌 곳에서도 잘 지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타츠미를 믿고 싶어졌다. 분명 타츠미와 함께라면 어려움이 있더라도 같이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게다가 제 정체를 알고서도 무서워하지 않았던 인간은 처음인지라 타츠미가 이대로 혼자 떠나버린다면 자신은 더 이상 인간을 믿지 못하고 죽여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요이는 대답했다.
"네, 좋아요."
타츠미와 마요이는 함께 배를 타고 저 수평선 너머로 나아갔다.
세이렌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매우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마력을 가진 님프.
항구 마을 아이들
항구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을 '항구 마을'이라 불렀다. 이 마을은 사는 사람이 적고 인적이 드문 곳이라 관광오는 사람도 없고 외지인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다. 그런 마을에 타츠미와 마요이는 한 살 터울에 유일한 아이들이었다. 분교도 없는 마을에서 타츠미와 마요이는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하며 자랐다.
작은 마을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바다 낚시를 가거나 배를 타고 저 먼 바다로 나가는 일뿐이었다. 타츠미는 어렸을 때부터 제 아버지를 따라 배 타는 것을 즐겨했고 조금 나이가 차고 난 뒤로는 혼자서 배를 운항할 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타츠미는 시간만 되면 마요이를 데리고 배를 타고 나가 둘이서 오순도순 소풍 아닌 소풍을 나가게 되었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앞 바다에서 배를 타고 나가는 게 고작이었는데 어느 새부터인가 타츠미는 더 먼 곳으로 나아가고 싶어했다. 물론 마요이도 그런 타츠미를 따라서 어디론가 가보고 싶어졌다. 난생 처음으로 이 마을을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발디딤을 해보고 싶다는 소원이 생겼다.
소원이 생기고 난 뒤로는 모든 게 순탄하게 풀렸다. 타츠미가 아버지의 배 키를 가져오는데 성공했고 마요이가 주방에서, 마을에 하나뿐인 슈퍼에서 음식과 간식을 사오는데 성공했다. 배에 하나 둘씩 채워넣고 있으니 괜히 마음이 들떠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해버릴 것만 같았다. 타츠미와 마요이는 서로의 입단속을 조심하자며 손을 꼭 잡고 떨어지지 않기로 했다.
드디어 제 날짜가 왔다. 이 항구 마을에서 벗어날 타츠미와 마요이의 계획 실행 날이었다. 어른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평소처럼 행동했다. 타츠미와 마요이가 정한 시간이 슬슬 다가오자 두근거림이 커지기 시작했다. 들키지 않고 나갈 수 있을까. 들켜도 나가고 싶었다. 이제 더 이상 작은 마을에 발 묶여 살고 싶지 않았다. 바다와 같이 넓은 곳으로 가고 싶다.
시간이 되었고 타츠미와 마요이는 배로 향했다. 닻을 올리고 시동을 걸어 조심스럽게 뒤로 빼서 반 바퀴를 빙글 돌린 후에 앞으로 나아갔다. 어른들은 평소처럼 앞바다에만 나가겠거니하며 '잘 다녀오렴'이란 인사를 했다. 그리고 타츠미와 마요이는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마지막 말과 함께 바다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 항구 마을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