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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천◆드라이버 님 (@5TFTI) - [ 증 (証) ]

 

 

증 (証) - 1. 식사와 눈물 

 

이번에 알칼로이드의 여러분들과 해안가에 야외 촬영을 오게 되었습니다. 바다는 그리운 곳이지만 해안가 근처는 아무래도 그늘이 많지 않아 햇빛이 내리쬐는 낮에는 그다지 내키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틀간의 짧은 여정이니 조금만 참으면 괜찮겠지요.

 

인근 숙소의 카페테리아에서 적당한 메뉴를 고르고 둘러앉아 그간 서로의 학급 이야기나 아이돌 활동, 그리고 같이 지내게 된 분들의 이야기를 하는 이 시간이 저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가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유한하니까요. 여전히 활기찬 히이로 씨와 귀여운 아이라 씨, 그리고 늘 저를 다정하게 대해주시는 타츠미 씨 덕분에 저는 요즘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여러분들이 배려를 해주셨는지 구석진 자리에 앉을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아이라 씨는 생선 뼈를 발라 먹는 게 불만이신가 보네요. 끙끙대며 살을 분리해내시는 모습마저 사랑스럽습니다. 제 시선을 느끼셨는지 저를 보고 눈썹을 치켜올리시네요.

 

"마요 씨는 편하겠어- 치아가 뾰족하니까 생선 같은 거 발라먹지 않아도 괜찮은 거 아닐까? 다 한 번에 콱! 하고 씹어버리면 될 테니까. 앗챠, 이런 말은 실례일까?“

 

그 말에 저는 그저 살짝 입꼬리만 올려보입니다. 

 

"아뇨, 괜찮아요. 그렇네요. 저는 생선뼈도 통째로 씹을 수 있고, 그 어떤 질긴 고기도 끊어 먹기 편하죠.“

 

그래요. 저에게는 자연스러운 이 모습, 그리고 이 특징이 다른 분들께는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겠죠. 제 앞에 놓인 지중해식 생선 스튜가, 숟가락을 저을 때마다 잔잔히 물결을 일으키며 음식물에 부딪혀 찰랑이는 것을 보며 저는 또 생각에 잠기게 되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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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저주를 받은 아이’

 

그것은 저의 이름이 붙여지기도 전에 생겨나 버린 별명이었습니다. 

 

이유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외형이나 신체적 특징이었을까요. 아니면 태어난 날짜나 순번 때문이었을까요. 글자를 모르던 시절부터 저는 저 별명을 이름보다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신의 저주'를 받은 저를 타인에게 보여주기를 꺼려 하셨고,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곤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 갇혀 하얀 벽면을 바라보는 것뿐입니다. 지루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서 입으로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보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노래를 불러보려고 했던 것이었겠지요. 

 

어느 날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다급하게 저의 방문을 여시곤 저의 손을 낚아채 어디론가 데려가셨습니다. 많은 어른들이 동시다발로 언성을 높이고 있었기에 저는 사실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절반은 분노에 절반으 환희에 차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은 기묘한 기척들이었습니다. 낯선 이들의 손길에 다시금 이끌린 저는 그렇게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선 제물 같은 것이었을까요.

 

물속에서 숨이 차올라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다고 생각했을 때 '그분들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눈이 잘 떠지지 않음에도 주변의 기척에 저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며 저의 존재감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그분들은 무언가 동그랗고 반짝이는 것을 저에게 녹여 먹였습니다. 그러자 숨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후로도 그 반짝이는 것을 수일간 먹게 되었고 제 몸은 이상하게 변해갔습니다. 아니, 지금의 저로서는 자연스럽게 변했다고 해야 할까요. 온몸 구석구석 비늘이 돋아나고 지느러미가 생기고 저는 더는 두 다리가 아닌 물고기의 꼬리와 같은 그것으로 헤엄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저와 같은 존재를 트리톤(Triton)이라고 불렀습니다.

 

이후로 온갖 바다 생물들과 소통이 가능해진 저는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물고기를 사냥하는 법-그들은 저의 동족과도 비슷했습니다만 동시에 영양공급원이었습니다-, 조개들 속에서 진주를 찾는 법, 헤엄치기 지쳤을 때 적당히 고래의 등에 타서 이동하는 법 등. 

 

저와 비슷한 형태를 한 존재들은 많지 않았고, 그분들은 저처럼 육지에서 가라앉은 존재가 아니었기에 저는 물속에서도 시간 대부분을 홀로 지냈습니다. 깊은 바닷속은 어둡고 조용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둡고 조용한 곳을 좋아합니다. 바다에서는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여전히 육지에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무섭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어졌을 때 문득 모두가 식사를 마쳤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도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크게 배고팠던 것은 아니니 괜찮습니다. 또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에 제 시간을 소비하고 싶으니까요. 히이로 씨와 아이라 씨는 남은 시간을 전에 지도해드린 부분을 연습하시겠다며 먼저 일어서셨습니다. 제가 지켜봐 드리겠다고 제안했지만 본인들끼리 연습해서 저를 놀라게 해주고 싶다는 깜찍한 말씀에 저는 수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저는 타츠미 씨와 둘만 남게 되었습니다. 제 옆에 앉으신 타츠미 씨는 아까부터 저를 유심히 바라보시네요.

 

"마요이 씨는 요즘 잠을 잘 못 주무시나요?“

 

다정한 질문이지만 그의 예리함은 늘 저를 놀라게 합니다. 저는 언제나 눈에 그늘이 조금 져 있는 편이고 평소에는 얼굴에 몸 상태를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니까요. 

 

"그렇게 잠을 못 자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상으로 좀 짧을 수도 있겠네요.“

 

조금 두루뭉술하게 대답을 해봅니다.

 

"그러시군요. 신은 모두에게 공평한 시간을 내려주셨는데, 최소 여덟 시간은 휴식을 취하는 게 마요이 씨 본인을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씀에 저는 이곳의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되새기게 되네요. 다른 이에겐 공평할지언정 저에겐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타츠미 씨는 모르시겠죠.

 

"하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무한하지 않으니까요. 그 시간을 저는 최대한 아껴 쓰고 싶은 것뿐이에요." 

 

"그런 자세는 본받을 만하네요. 하지만 얼굴빛이 좋지 않으시니 혹시 수면 부족으로 제 반려(伴侶)께서 건강이라도 잃으실까 염려됩니다.“

 

생글생글 웃으시며 또 저를 흠칫하게 만드는 단어를 은근히 섞어 말씀하시네요.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말 그대로 온전히 걱정하시는 모습이 어째서인지 제 심장을 쥐어짜는 것만 같습니다. 사실 건강보다 더한 것을 잃을 수도 있는걸요. 

 

아무것도 모르는 저 무지함에 까만 오점이라도 남기고 싶은 오기였던 걸까요. 깨끗한 것을 더럽히고 싶은 비틀린 본능이었던 걸까요-아아, 저는 어째서 이렇게나 음침하고 더러운 존재일까요. 저도 모르게, 드물지만 당돌하게도, 도발하는 말을 하고 만 것입니다.

 

"타츠미 씨는, 제가 어느 날 저에게 주어진 유한의 시간이 다하여 사라지게 되면 슬퍼하실까요?“

 

두서없는 의외의 질문에 그의 눈이 커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저는 아름다운 자색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하며 대답을 재촉하는 눈빛을 보냅니다. 한동안 말이 없으시더니 무겁게 입을 여시네요.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그의 대답이었습니다.

 

 

 

 

 

 

 

 

 

증 (証) - 2. 눈물과 노래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요이 씨의 질문에 나는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는 내 대답의 참된 의미를 모를 것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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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축복을 받은 아이’

 

내가 태어난 곳에서 그분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느 정도 지성을 가진 존재였던 나는 그 말뜻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해도 내가 다른 이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득한 시간을 배양해서 키워낸 그들의 아이는 안타깝게도 눈물을 생산해낼 수 없었습니다. 그 증거가 이미 눈물을 다 흘려보낸 듯한 볼의 점들이었습니다. 인어의 눈물은 귀한 소재입니다. 그것은 바다에서도 육지에서도 최상급 보석으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그만큼 인어들의 감정과 기력과 생명을 온전히 부여하여 빚어낸 결과물입니다.

 

그 귀중한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사실에 나는 두려웠지만 오히려 그분들은 나를 신의 축복을 받았다며 위로했습니다. 처음엔 그게 단순히 인어의 눈물을 생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인 줄로만 알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있어야 할 곳이 다르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바다에서의 시간은 짧았습니다. '신의 축복'을 받는 나는 물속의 삶이 오래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은 나에게 이곳의 일들을 잊고 나에게 어울리는 곳에서 살 수 있게 될 거라며 진주같이 둥글고 빛나는 것을 지속해서 먹이셨고, 나의 신체는 뭍에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신의 배려였는지 나는 교회의 아이가 될 수 있었습니다. 교회의 가족들은 나를 처음부터 자신들의 아이였던 것처럼 여겨주셨습니다. 나도 그분들을 가족으로 생각합니다. 바닷속에서 함께한 분들은 가족이라기보다는 동지의 느낌이 강했으니까요. 가족들은 나를 보통 아이와 똑같이 대했습니다. 잘못하면 꾸중하고 잘하면 칭찬하며, 그렇게 나는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나름 순탄하게 자라왔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걸음마조차 힘들었습니다. 비늘과 꼬리가 사라지고 생겨난 두 다리는 영 적응이 되질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가족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이후에는 곧잘 뛰기도 하고 언젠가부터 춤을 추는 것도 좋아하게 되었으니까요. 아마 아이돌 학교에 입학을 결정하게 된 것도, 노래와 춤을 사랑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노래는 트리톤(Triton)이자 세이렌(Seiren)의 일원이던 저에겐 자연스러운 특기였기에 이 재능을 통해 사람들에게 제가 받은 신의 축복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이상하고 의아한 점은 바다의 그분들은 나에게 그 당시의 삶을 잊을 거라 하셨지만 나는 너무나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가끔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질감이라고 할까요,  나와 타인 사이에 벽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단순히 사람 간 성격이나 성향 차이에서 오는 벽이 아닌 다른 종족 간의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것 말입니다. 그 때문인지 나는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외로웠습니다. 마음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도 얼마 없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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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지금의 알칼로이드의 여러분들이, 내 앞에 있는 마요이 씨가 누구보다 소중합니다. 모든 비밀과 진실을 말해드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레이메이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더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이 듭니다. 어째서인지 그리운 느낌이 나기도 하고요. 

 

그런 나에게 갑작스레 자신의 시간의 끝을 말씀하시는 마요이 씨에게 흘릴 수조차 없는 눈물을 언급한 것은 그만큼 상상만으로 절박해지는 심정과 절망의 고통을 표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혹여 그 진실된 의미가 전달될 수 없더라도요.

 

이후 마요이 씨도 나도 서로를 가만히 응시할 뿐 그 이상의 대화는 없었습니다. 어색한 침묵 끝에 나는 스태프분들을 찾아가 이후 일정을 확인하기로 하고 마요이 씨는 히이로 씨와  아이라 씨를 데리러 가기로 하고는 다른 방향으로 헤어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또 할 수 있겠지요.

라운지의 코너를 돌아가니 멀리서 반쯤은 벽에 가려진 두 인영이 보입니다. 조금 다가가니 안무와 보컬 스탭 분들의 목소리가 들리네요. 의도치 않게 대화를 엿듣게 되어서 죄송하지만 내 이름이 들려서 섣불리 다가가지는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 네. 아무래도 타츠미 씨는 오랜 기간 안무를 하시기엔 다리가 불편하시니 그 점을 고려해서 안무를 짜고 있는 편이죠.”

 

"휴학 전에는 레이메이에서 솔로로 아이돌 활동을 하셨다고 하던데요. 다리 부상이라니 조금 의아하긴 해요. 안무는 어느 정도 상황에 따라 간소화할 수 있으니까요. 보통 아이돌들이 무리하면 가장 먼저 목에 문제가 오죠. 성대결절이라던가. 하지만 여전히 청아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이시니. 마치 노래를 부르는 데에는 언제든, 얼마든 문제가 없다는 것처럼요.“

 

가끔은 기분 나쁠 만큼 예리한 분들이 있습니다. '인간' 중에서도 말이죠. 아니면 저의 믿음과 수행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분들이 이따금 눈치를 채시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증 (証) - 3. 노래와 운명

 

 

기나긴 오후 촬영이 끝나고 밤이 찾아왔을 때 저는 몰래 숙소를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오랜 시간 춤을 추며 사진과 영상을 찍느라 기진맥진하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은 단 이틀이고 저에게 이렇게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은 지금뿐이니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촬영 도중엔 이미 녹음된 음악을 쓰기 때문에 노래를 직접 부를 일이 없어서 이참에 해안가 경사진 곳을 걸어 올라가며 바람에 음색을 섞어봅니다. 물속에서는 언어로 대화하지 않지만 종종 물 밖으로 몸을 내밀고 노래를 부르면 온갖 바다의 친구들이 근처로 모였었는데 이곳은 육지와 너무 가까워서 아무도 오질 않는 걸까요? 크게 관여치는 않지만 조금 쓸쓸하네요.

 

꽤 오랜 시간 비탈길을 올라가니 거의 절벽이나 다름없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지만 파도가 거센 편이라 일반적으로 이런 곳에 서 있거나 물 속으로 뛰어내린다면 위험하겠죠.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아마 바닷물이 닿는 순간 제 몸은 순식간에 물에 어울리게 변하겠지요. 인적이 없는 야밤의 해안가. 그리고 저 멀리 커다란 달빛만이 새까만 물 위를 흐르듯 비추고 있지만 이곳에서 저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도 됩니다. 어차피 모든 것은 심해에서는 부질없으니까요. 일단 차후를 생각해서 옷가지를 벗어 근처에 둔 뒤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습니다.

 

몸이 물에 닿은 뒤에는 웅크린 채 빠른 속도로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신체의 변화를 기다려봅니다. 숨도 편해지는 시기를 기다려봅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요. 수 초가 지났는데 저에겐 지느러미도, 꼬리도 생기질 않고 숨도 차오르기만 합니다. 이상하네요. 분명 저를 육지로 보내주신 분들은 제 몸이 바닷물에 담궈지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일단 발버둥을 치며 수면 위로 올라가려고 해보지만 생각보다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갑작스레 처음 제물로 던져진 그 날이 생각나서 온몸이 경직되는 것만 같습니다. 그 어떤 곳보다 편안했던 이 짙은 신의 수조 안이 갑자기 두렵게 느껴집니다. 그때였을까요, 저를 구해줬던 그분들처럼 어떠한 존재가 저에게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어렴풋하게나마 보입니다. 그때와 다른 것은 그분들은 저에게 무언가를 먹이고 더 깊은 심해로 데려가셨다면, 이 존재는, 그러니까 이분은 제 몸을 감싸 안고 물 위, 미처 가라앉지 못한 달빛을 향하시네요.

 

그렇게 어렵사리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고 가쁜 숨과 물을 토해내 봅니다. 그리고 저를 구해주신 은인을 눈을 비비며 바라봅니다. 잠들어 계셔야 할 분이 이곳에 있다는 것에 놀랄 따름입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참으시던 숨을 빠르게 내쉬시며 달빛에 반사된 머리를 한껏 흔드신 타츠미 씨는 저를 보시면서 목청을 높이셨습니다.

 

“마요이 씨, 제정신이에요? 지금 이게 뭐 하시는 겁니까?”

 

갑작스러운 격한 말씀에 저는 또 우물쭈물하게 됩니다.

 

“아, 아니. 일단 진정하시고 그게-”

 

제가 제대로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타츠미 씨는 제 어깨를 잡으시며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낮에는 유한한 시간이 어떻다느니 사라진다느니 의미심장하신 말씀을 하셔서 온종일 신경이 쓰였는데, 밤에는 홀로 숙소에서 나가시는 기척이 느껴져 따라와 봤더니 절벽에서 스스로 뛰어내리고 계시는데 제가 어떻게 진정할 수가 있나요?”

 

맞는 말씀이시죠. 하지만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 지 몰라 여전히 가쁜 숨만 들이키고 내쉬면서 타츠미 씨를 바라봅니다. 타츠미 씨도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목소리만큼이나 커다란 숨소리를 부딪치는 물 사이사이로 섞으시며 조용해진 저를 바라보시네요. 이윽고 제 어깨 부근을 다시 감싸시더니 저를 데리고 헤엄치듯 혹은 유영하듯 물 바깥으로 이끄셨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꼴이라 부끄러워하는 저를 위해 젖은 셔츠를 벗어 내밀어 주신 타츠미 씨는 절뚝거리시며 모래사장 근처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으셨습니다. 

 

“아.. 아.. 으.”

 

말도 제대로 나오질 않습니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저 같은 것 때문에 아픈 다리로 절벽을 뛰어내리셨는데. 물속을 헤집고 저를 구해주셨는데 아무 설명도 제대로 해드리지 못하고, 타츠미 씨의 아픔도 이제야 눈치를 채다니.

 

“큰 소리를 내서 미안해요.”

 

다정하신 분. 사과는 제가 해야 하는데 오히려 저에게 사과하시네요. 이에 겨우 입을 떼어봅니다.

 

“타츠미 씨. 다리는요.”

 

“지금 내 다리가 중요한가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씀하시지만, 평소에 얼마나 철저하게 고통을 숨기고 다니시는지를 눈치채고 있었기에 절뚝거리시는 현재 타츠미 씨가 제가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감수하고 계시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잰걸음으로 그의 앞으로 가서 뒤돌아 앉습니다.

 

“업히..실래요?”

 

그날 밤 공중 정원에서처럼요. 

 

“지치긴 했지만 체력이 바닥은 아니에요.”

 

“타츠미 씨가 잘 걷지 못하시는 모습을 보느니 제가 죽어버리는 게 나아요.”

 

우스우시겠지요. 타츠미 씨 입장에서는 아까 제가 죽으려고만 한 것 같으실 테니까요. 이제 와서 이런 말을 들으시니 얼마나 황당하시겠어요. 등 뒤로 느껴지는 침묵이 저에겐 무겁기만 합니다. 

 

하지만 저에겐 눈을 질끈 감고 온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머지않아 귓가에 느껴지는 달뜬 숨결과 등을 감싸는 차가우면서도 묵직한 체온이 저를 안도하게 해주네요.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타츠미 씨가 낮은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마요이 씨, 정말로 무서운 마음을 먹으셨던 것은 아니시지요?”

 

“네, 정말이에요. 저에게 스스로를 해할 그런 용기는 없어요. 단순히 수영을 하려고 했던 것뿐이에요. 어두워서 수심을 착각했던 모양이지만.”

 

되지도 않는 수식을 붙인 변명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헤엄을 치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렇군요.” 

 

그렇게 다시 찾아온 정적. 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화젯거리도 생각나질 않아요. 

 

“흠흠, 어두웠지만 정말 완벽한 자세였던 것 같습니다. 아이돌이 아니었다면 다이빙 선수를 하셨어도 되었을 정도로요.”

 

잔잔하게 웃으시는 기척에 저도 함께 빙그레 미소를 지어봅니다. 언제나 저를 이렇게나 배려해주시는 분에게 자꾸 짓는 죄만 늘어나네요.

 

언젠가 진실을 말씀드릴 수 있는 날이 올까요. 타츠미 씨의 그 농담처럼 던지시는 반려가 아니라 저는 진짜 제 운명을 찾아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었다고요. 저와 비슷한 분이라면 춤과 노래에 능하실 테니 이쪽 분야에 계실 것이라 생각하여서 아이돌이 되었다고요. 육지에서 태어나 그 기억과 특징을 갖고 바다에 속하게 된 저와 반대되는 기묘한 운명을 가지시게 된 분을 찾으라며 그분들의 도움으로 이곳에 있다고요. 그래서 그분을 만나게 되거나, 혹은 주어진 기간 안에 그분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면 이 소꿉놀이와도 같은, 그리고 꿈같은 시간들이 사라지리라는 것도요. 

 

물에서 숨 쉬어야 할 물고기가 뭍에서 태어나고 뭍에서 공기를 마셔야 할 사람이 물속에서 태어나기도 하는 엇갈린 운명에 자비로운 신은 서로의 세계로 돌려보내 주지만 태어난 곳의 성질을 완전히 잃지 않고 반반씩 가지게 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요.

 

사박사박 모래를 밟는 소리, 그리고 타츠미 씨의 달콤한 체취, 뜨거운 숨결과 부드러운 손길을 전신으로 느끼며 아직은 그저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서글퍼지지만, 그래도 오늘 밤은 타츠미 씨와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어서 마음은 한결 부드러워진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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