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섯마녀 님 (@gamelovewitch) - [ 어떤 저주 ]
파도에 바스라져
그 인어 마을에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저주가 하나 있었다. 현재 나이가 제일 많은 인어조차 겪어보지 못한 옛날에, 인어의 사랑을 얻지 못한 마법사가 내렸다고 하는, 저주. 스무 살까지 좋아하는 이와 이어지지 못한 인어는, 작게 밀려오는 파도에도 바스라져, 사라져 버린다는 저주였다. 전설은 보통 거짓으로 취급되기 마련이지만, 이 저주는 꾸준히 희생자를 내었고, 모든 인어가 자신의 자식한테 알려주었기에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다.
마요이도 어릴 적부터 부모님에게 저주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왔었다. 잔인하지만, 어딘가 로맨틱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스무 살이 너무나 먼 미래인 어린 시절에 들었기에 현실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야기를 안 믿은 건 아니었다. 그의 부모님도, 마을의 어른들도, 적어도 이런 거짓말을 할 인어는 아니었으니까. 그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에 잊고 살았을 뿐이었다.
마요이의 옆집에서 희생자가 나왔다. 불쌍하게도⎯그의 어머니는 이 말을 세 번이나 반복했다⎯ 인간을 사랑한 인어였다. 인간과 인어의 사랑은 대체로 끝이 좋지 않았다. 인간들이 인어의 존재를 믿었던 옛날에도 그랬고, 믿지 않는 요즘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그 인어는, 불쌍하게도, 인간을 사랑했다. 마요이는 옆집에서 들려오던 울음소리를 기억했다. 세상이 끝난 듯, 서럽게 울어대는 소리에, 마요이도 동화되어 무릎에 고개를 박고 눈물을 흘렸었다. 마요이가 열여섯일 때의 일이었다.
그때까지 마요이는 누구도 마음에 품어본 적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누군가를 마음에 품는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다. 감히, 자기 같은 음침하고, 모두가 싫어하는 인어가 감히, 누군가를 좋아한다니. 그 자체로도 민폐였다. 어머니와 아버지 또한 그렇게 말했다. 저녁마다 마요이를 앉혀놓고, 세뇌하듯 속삭였다. 마요이를 좋아할 존재는, 이 세상에 없으니 아무도 좋아하지 말고 조용히 지내는 게 목숨을 지키는 일이라고. 열여섯, 그 사건 이후로는 특히 인간은 절대 사랑하지 말라는 말 또한 추가되었다.
그렇게,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었는데….
※ ※ ※
햇볕이 내리쬐는 한적한 해변, 그곳에 죽은 듯이 누워있는 인간과 바위 뒤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인어 한 명. 마요이는 3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차근차근 생각해보았다. 저 인간은 누구이며, 자신은 왜 여기에 숨어 있는지, 머릿속이 작은 물고기 떼가 지나가는 것 마냥, 선명하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부모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 오랜만에 용기를 내어 집 밖으로 나왔었다. 산호와 물고기들과 인사를 하고, 집 주위를 돌아다니는데, 마을의 꼬마들이 다가와서 마요이를 괴롭혔다. 저주에 겁을 먹어 집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 겁쟁이라며, 꼬마들은 마요이를 물 위로 몰아붙였다. 마요이는 저항할 수 없었다. 섣불리 무언갈 했다가 꼬마들을 다치게 하기 싫었고, 자신이 못났기에 이렇게 괴롭힘을 당한다고 생각해 저항하지 못했다. 그때, 용기를 내서… 저항하거나, 피했다면…. 아니, 애초에 밖에 나오지 않았다면…. 심해로 파고 들어가던 마요이의 입에서 버릇처럼 죄송합니다, 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 해변의 인간이 몸을 뒤척였다. 멀리서 들려오는 작은 신음에 놀란 마요이가 그대로 물속으로 몸을 숨겼다. 조그만 뒤척임 뒤에는 익숙해진 정적이 들려왔다.
기척을 살피는 데에 익숙한 마요이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지만, 인간이 깨어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대로 고개를 내밀면 바로 눈이 마주칠까 봐, 물속에서 다시 아까의 상황을 생각해보았다. 물 위로 올라간 마요이와 꼬마들은, 바다에 빠진 인간을 발견했다. 부모님에게 무슨 얘기를 들은 건지, 꼬마들은 인간을 보자마자 괴물이라 외치며 도망갔다. 하지만 마요이는 그들을 따라, 갈 수가 없었다. 인간은 물속에선 숨을 쉬지 못한다고,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 말은, 이대로 저 인간을 두고 가면, 죽는단 거였다. 절대 인간을 사랑하지 말라던, 가까이 가지도 말라던 어머니의 말과 동시에, 몇 년 전 파도에 바스라진 인어가 떠올랐다. 그래도,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두 마디를 반복하며 마요이는 인간에게로 다가갔다.
괜찮을 거라니….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다.
아름다운, 아름답다 못해, 눈이 부신 인간이었다. 청록색 머리가 물결에 흔들렸고, 마요이의 심장 또한 같이 흔들리다, 별안간 터져버렸다. 심장을 주워 담느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신경을 못 쓰는 바람에, 그 뒤의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에 없었다. 굳이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상황을 보면 알겠지만, 어찌어찌 물 위로 옮기긴 한 모양이었다. 심장은 아직 조각 난 상태였다. 조각을 모으고, 다시 흩어지지 않게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꿰매는 건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마요이는 손안에 소중히 모은 심장 조각을 보았다. 조각났음에도 붉은빛을 내며 뛰고 있어, 마요이의 얼굴도 따라서 붉어졌다. 하나라도 떨어뜨리지 않으려 힘을 주고 있는 손이 슬슬 한계라고 외쳐왔을 때, 말소리가 들렸다. 그에 깜짝 놀란 마요이는, 조각들을 모두 떨어뜨리고 말았다.
“인기척이 느껴지는데, 저를 구해주신 분인가요?”
물속에 숨어 있어서 모를 거라는 생각에 안심하고 있었는데…. 인간은 마요이의 생각보다 감이 좋았다. 어쩌면, 마요이처럼 기척을 살피는 데에 익숙할 수도, 있지, 가능성 없는 희망을 생각해보곤, 물 위로 올라갔다. 눈만 내밀었는데, 이미 이쪽을 보고 있던 건지 인간과 딱 마주쳐버렸다. 반짝반짝 빛나는 보라색 눈으로 마요이를 발견한 인간은, 마요이를 향해 미소 지었다. 몸이 굳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밑으로 떨어진 심장 조각들이 난리였다. 인간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더니 바다 쪽으로 다가왔다. 자세히 보니, 한쪽 다리를 다친 건지 절뚝거리고 있었다.
“얼굴을 보여주실 수 있나요, 생명의 은인님?”
마음을 안정시키는 부드러운 음성에, 마요이는 저도 모르게 물 밖으로 얼굴을 모두 내밀었다. 인간의 미소가 더 짙어지더니, 마요이에게 손을 내민다. 책에서 보았던 인간들의 인사인 건지, 자신을 물 밖으로 나오게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요이는 그 손을 잡았다. 맞잡은 손은 두어 번 위아래로 흔들리더니 떨어졌다. 인간의 손은 이런 감촉이구나, 마요이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인간의 손과 달리, 물갈퀴와 비늘이 있는… 아차, 인어인 걸 들키면 안 되는데. 황급히 손을 숨겼다. 인간이 아무 말 않는 걸 보니, 다행히 눈치를 못 챈 것 같았다.
“인어는 동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실재하는 거였군요.”
방심하고 있다가 들려온 말에 마요이는 꼬리에 힘이 풀렸고, 그대로 물 아래로 들어갈 뻔하다가 겨우 다시 올라왔다. 인간은 다시 마요이에게 질문을 했다.
“저는 타츠미라고 합니다. 인어 씨. 당신의 이름은?”
“...마요이, 입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요이 씨.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인간, 아니 타츠미와 마요이는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타츠미가 일방적으로 질문을 했고, 마요이는 그에 답하는 게 전부였지만, 마요이는 그에 대해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이 해변에는 휴가차 온 것이며, 직업은 목사라는 것. 일주일 정도 머무르고 떠날 거라는 것도 알았다. 마요이는 저주가 떠올랐다. 일주일 후는 마요이의 생일, 스무 살이 되는 날이었다. 그때까지 이 인간의 사랑을 얻지 못하면, 마요이는 가루가 되어 사라질 것이었다. 타츠미는 좋은 인간이었다. 마요이의 느리고 답답한 대답을 느긋하게 기다려주었고, 제대로 대답하지 못해도 이해해 주었다. 습관처럼 나오는 사과와 자기 비하에는 괜찮다며, 마요이를 다독여주기도 하였다. 대화하면 할수록, 마요이는 타츠미가 좋아졌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완벽한 인간이, 불완전한 자신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어차피, 삶에 큰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음에 품은 이가, 타츠미라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마요이 씨?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시나요?”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저, 괜찮으시다면…. 내일도, 오늘과 비슷한 시각에 이곳에 와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안 그래도 저도 물어보려 했었습니다. 곧 저녁 시간이라, 가봐야 했거든요.”
그러고 보니, 어느새 주위가 상당히 어두워져 있었다. 부모님은, 마요이가 없어진 걸 알고, 찾고 있을까. 그래도 저녁 먹을 시간이니… 알아채기는 하겠지. 어디 갔다 왔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혼날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물 위로 올라왔을 때부터 각오한 거라 크게 무섭지는 않았다. 타츠미가 몸을 일으켰다. 내일 또 보자며 인사를 하고, 미소 지었다. 붙잡고 싶었다. 내일 또 만나기로 했지만, 이대로 등을 돌리면 다시는 못 볼 거 같아, 팔을 뻗으려다가 내렸다. 오겠지, 올 거야…. 오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지…. 마주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예상 외로 부모님은 마요이를 혼내지 않았고, 나갔다 온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마요이는 그게 더욱 슬펐다.
다음 날, 부모님은 마요이에게 집에 콕 박혀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는 나갔다. 마요이는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부모님이 멀리 사라진 걸 확인하곤, 곧장 물 위로 올라갔다. 약속 시각까지는 꽤 남았지만, 집에서 기다리기만 하는 건 싫었다. 오늘도 해변에 사람은 없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약속보다 일찍 타츠미가 모습을 드러냈고, 마요이는 그 날 처음으로 짓는 미소를 보이며, 그를 반겼다. 둘은 신나게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저녁이 되면 헤어졌다. 그런 생활이 6일째 계속되는 동안, 부모님은 한 번도, 마요이가 어디에 갔는지 묻지 않으셨다.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자식이니, 당연히 나갔을 거로 생각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그냥 마요이에게 관심이 없는 걸까. 그럼 지금까지 세뇌하듯 속삭이던 말들은 무엇이었냐고, 묻고 싶었지만, 얘기를 나눴다가 원치 않은 방향으로 일이 흘러갈 것 같아 그만두었다. 지금의 마요이에겐, 그런 무관심이 필요했다.
※ ※ ※
6일째 되는 날, 마요이는 내일, 자신이 언제 사라질지 몰랐다. 날이 바뀌자마자 사라질까. 어머니에게 옆집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가, 아침이긴 했는데. 그렇다면, 오늘이 마지막 만남이라는 말이 된다. 언제나처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타츠미에게는, 내일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내일은 못 볼 거라고,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말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타츠미라면, 내일도 와서 기다릴 테니까. 자신에 대한 마지막 기억을, 기다림으로 장식하고 싶진 않았다.
“아, 마요이 씨. 내일은 더 일찍 만날까요? 비행기가 오후로 잡혀 있어서요.”
“아… 내일…. 저는, 내일은 여기 못 올 것 같, 아요….”
“…마요이 씨,”
타츠미의 부름에 마요이가 움찔, 했다. 화내려는 걸까, 이제 가는데, 와서 배웅해주지도 않는다고, 실망하려는 걸까. 타츠미의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아 눈을 내리깔았다. 그런 마요이의 시야에 들어온 건, 타츠미의 손이었다. 큰 손이 마요이의 볼을 감쌌다. 놀라서 시선을 올리니, 타츠미의 얼굴에는 실망이 아닌 걱정이 묻어 있었다.
“울지 마세요. 다음에,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또 오겠습니다. 연락할 방법은 없지만… 우리는, 또 만날 거라고 믿어요.”
마요이의 표정이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려있던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 말에 마요이는 겨우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타츠미의 손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죽고 싶지 않았다, 타츠미가 말한 것처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었다. 삶에 미련 같은 거, 없다고 했지만, 그저, 이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그래도, 이런 삶이어도, 타츠미 덕분에, 그나마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가 전해준 수많은 긍정 덕분에, 자신을 조금이라도 좋아하게 될 것 같았는데. 타츠미는 묵묵히 마요이의 울음을 바라보았다. 따스한 눈빛과 손길로, 그를 다독이고, 침묵으로 진정시켰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마요이는, 억지로 눈물을 삼켰다.
“…저희, 인어들 사이에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저주가 있어요.”
“저주… 요?”
“네…. 스무 살까지, 좋아하는 이와 이어지지 못한 인어는, 조그만 파도에도 몸이 바스라져, 죽게 된다는…. 그저 허구처럼 느껴지지만, 몇 년에 한 번씩, 그 저주 때문에 인어들이 죽어요.”
눈 밑이 잔뜩 흐른 눈물 때문에 따가웠다. 마요이는 코를 훌쩍이면서 타츠미를 보았다.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렇다고 무슨 말을 하지도 않았다. 이야기가 더 있는 것을 아는 듯, 늘 그렇듯 차분하게, 타츠미는 마요이를 기다려주었다.
“내일은, 제가 스무 살이 되는… 생일이에요. 그리고 저는… 타츠미 씨를…”
일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고백. 결정적인 한 마디가 도저히, 입에서 나오질 않았다. 입만 뻐끔거리는 마요이를 보고 있던 타츠미가, 몸을 일으켜 바다로 들어왔다. 놀란 마요이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고, 타츠미는 마요이를 붙잡아 안았다. 잠시 당황하던 마요이 또한, 팔을 뻗어, 타츠미를 끌어안았다. 조각난 상태로 방치했던 심장이 생각났다. 마요이는 몸 곳곳에 흩어진 조각들을 다시 모으기 시작했다.
어둠이 더욱 짙어졌다. 마요이는 하늘에 뜬 달을 바라보다가, 밀려오는 파도를 보고는 눈을 감았다.






